[미인(美人)역사기행] "오랜 기간 국내외를 넘나들며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독립운동가" 장성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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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美人)역사기행] "오랜 기간 국내외를 넘나들며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독립운동가" 장성심 선생!
  • 최창훈 기자
  • 승인 2019.09.30 0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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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최정범 기자

[우먼포스트] 최창훈 기자 = 국가보훈처는 올해 100주년 3·1절 맞아 3·1운동과 학생운동, 의병, 국내·외 항일운동 등을 통해 조국 독립에 기여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333명을 발굴하여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그 중에서 중국과 국내를 넘나들며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 장성심 선생께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장성심 선생은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신홍식으로부터 만세운동에 관한 연락을 받은 박현숙의 지휘 아래 권기옥, 한선부, 김순복, 차진희, 최순덕, 김명덕 등과 함께 기숙사의 일본인 사감 호시코의 눈을 피해 태극기를 만드는 한편 애국가 가사도 등사하였다.

장 선생은 1920년 4월 황해도 봉산군에서 사립 왕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여자청년회 활동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1921년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1924년 5월 흥사단에 입단, 이듬해 상해에서 활동하다 귀국했다.

​1938년 10월 봉산군에서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장 선생은 이후 상해로 다시 건너가 1940년까지 흥사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사진=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장성심 열사다.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사진=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장성심 열사다. / 국사편찬위원회

장성심 선생은 1906년 11월 2일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나 1981년 12월 20일 중국 남경에서 사망했다. 여성으로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국내와 중국을 넘나들며 독립을 위해 활동한 흔치 않은 사례이다. 

 

 

※ 본 기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진 여성 영웅을 조명한 글로써, 우먼포스트 구독자들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해 제작된 기획기사입니다. 따라서 사실정보만을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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