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역사기행]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비행사,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 ‘조선총독부 폭격을 계획한 조종사 권기옥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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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美人)역사기행]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비행사,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 ‘조선총독부 폭격을 계획한 조종사 권기옥 선생’
  • 최창훈 기자
  • 승인 2019.09.23 0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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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최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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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포스트] 최창훈 기자 = 가명 임국영(林國英). 권기옥(權基玉)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남경 국민정부 항공사 소속으로 활동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한국애국부인회 사교부장을 지냈다.

권기옥 선생은 1901년 평양출신으로 숭의여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했고, 직접 거리에 나가 만세 시위를 하다 유치장에 구류되기도 하였다.

이후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군자금 모금, 폭탄 운반 등의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사진 =권기옥 여성독립운동가 / 네이버 블로그
사진 =권기옥 여성독립운동가 / 네이버 블로그

평안남도 경찰부 청사에 폭탄을 던질 목적으로 독립단원들을 국내에 잠입 시킨 임시정부는 권기옥 선생의 숭현소학교 석탄창고를 은신처로 제공하여 독립단원들과 폭탄을 제조, 그 해 8월 3일 거사에 사용하게 하였다.

권 선생은 1920년 동료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망명생활을 시작, 상하이 임시정부로 몸을 피한 그녀는 비행사가 되기 위해 중국어와 영어를 배울 목적으로 서양선교사가 경영하는 항주의 홍도여학교 중학과에 입학해 1923년 6월 졸업하였고, 이후 영어를 습득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사진 =권기옥 여성독립운동가 / 네이버 블로그
사진 =권기옥 여성독립운동가 / 네이버 블로그
임시정부의 추천으로 중국의 항공학교에 입교하였고 1925년 제1기생으로 졸업하여 여성으로서는 한국 최초의 비행사가 되었다.

3·1 운동 이후 권기옥 선생의 낭만적인 날개의 꿈은 조선총독부와 천황궁을 폭격하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변해 있었으나, 권 선생을 비롯한 대한민국 비행사들이 활동할 무대가 없었다. 

상해로 돌아온 권 선생은 임정에 조선총독부를 폭파할 테니 비행기를 사달라고 요구했지만, 당시의 임시정부의 사정은 권선생의 요청을 들어 줄 만큼 자금의 여유가 없었다.

이후 권 선생은 중화민국 공군에서 중령에까지 올랐으며, 1932년 상하이 전투에서 비행기를 몰고나가 일본군에게 기총소사를 했고, 이 상하이 전투에서 활약한 공로로 권 선생은 무공훈장을 받는다.

1943년 권 선생은 중국 공군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비행사들과 함께 한국 비행대 편성과 작전계획을 구상, 1945년 3월 시행되었던 '임시정부의 미국과 중국에서 비행기를 지원 받아서 한국인 비행사들이 직접 전투에 참여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의 ‘한국광복군 비행대의 편성과 작전’이 그 결실이었다. 

일본이 예상보다 일찍 패망하여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1949년 귀국하였으며, ‘공군의 아주머니’로서 한국 공군 창설의 산파 역할을 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1988년 4월 19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에 안장되었다.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2003년 국가보훈처가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 본 기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진 여성 영웅을 조명한 글로써, 우먼포스트 구독자들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해 제작된 기획기사입니다. 따라서 사실정보만을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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