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역사기행] 개성시내 독립선언서를 배포, 옥중 만세운동 활약한 어윤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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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美人)역사기행] 개성시내 독립선언서를 배포, 옥중 만세운동 활약한 어윤희 선생!
  • 최창훈 기자
  • 승인 2019.11.04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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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최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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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포스트] 최창훈 기자 = 어윤희 선생은 수감생활 중 "내 몸이 묶을지언정 내마음은 묶을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말과 함께 옥중 투쟁을 계속했다.

독립선언서를 약 80매 전달받은 어윤희 선생은 오후 2시경 조선독립선언서라고 알리며 조선인과 부근 주민들에게 수십장을 배포하였다. 이일로 일본경찰에 끌려가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사진 = 어윤희 선생 / 국가보훈처
사진 = 어윤희 선생 / 국가보훈처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 분들처럼 쉬지 않고 항일투쟁에 앞장 섰고, 투옥중인 선생을 비롯한 여성 투사들은 1919년 크리스마스 이브날 옥중 만세시위 투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 3월 1일을 맞이하여 통방이라는 감방 안의 비밀통신 방법으로 17개 여자감방의 세를 모아 이 날 오후 2시에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투쟁을 전개 3.1운동 1주년 기념 만세투쟁을 주도하였다.

시위를 진압한 일본 교도관들은 주도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여성 독립운동가 분들을 고문하였고 그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는 순국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투옥하던 어윤희 열사는 1920년 4월 28일에 출감하게 됩니다.

출옥 후 어윤희 선생은 개성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신앙 이외에 민족의식고취와 계몽교육활동에 힘을 썼다. 또한 선생은 개성여자교육회, 신간회와 근우회 개성지회 등에서 지도급 인사로 이 지역 민족독립투쟁과 여권신장 활동에 앞장셨다.

1931년 5월 신간회 해소 이후 어윤희 선생은 민족운동단체에서 물러나 아동복지활동에 헌신하게 된다.

​1937년, 감리교의 지원 하에 개성 유지의 도움으로 개성 고려정에 '유린보육원'이란 고아원을 설립, 고아들을 돌보았으며 해방 후 월남하여 서울 마포에 서강유린보육원을 설립해 운영하다가 1961년 11월 18일 보육원에서 사망하였다. 1953년 플로렌스나이팅게일기장, 1959년 인권옹호 공로표창을 받았다.

어윤희(魚允姬, 1880.06. 20. ~ 1961.11.18.) 선생은 대한민국의 기독교 전도사,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이며, 본관은 함종이다. 

1894년(고종 31) 결혼하여 3일 만에 남편이 동학군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2년 후에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하여 개성으로 이주하여 교육을 받았고, 독립운동을 했다.

 

 

※ 본 기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진 여성 영웅을 조명한 글로써, 우먼포스트 구독자들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해 제작된 기획기사입니다. 따라서 사실정보만을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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