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임계훈 작가의 렌즈로 보는 세상] 참교육#1.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상태바
[칼럼 : 임계훈 작가의 렌즈로 보는 세상] 참교육#1.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 임계훈 칼럼리스트
  • 승인 2019.11.22 1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누구로 사는가?

 
[우먼포스트]임계훈 칼럼리스트/전문기자= 그동안의 칼럼에서는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그리고 마음속의 본질에 대해 종교별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소개하였고 그 본질을 활성화하는 것이 참 교육이라고 하였다.

그 마음의 본질이 진짜 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이는 내가 다 내가 아니다. 진짜 나는 그 본질의 소리에 반응하는 나뿐이다. 마음의 소리가 아닌 외부의 것에 반응하는 
존재는 다 가짜요 허상이다. 그래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내 마음외의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다 그림자요 허상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반응하는 것은 가짜 나, 즉 자아요 에고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들면 명품 옷이나 가방을 걸치고 으쓱해진다면 그 으쓱해하는 나는 가짜다.
진짜 나는 명품과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명품이란 단어대신 학교, 재산, 지위, 생김새 등등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사진=구글캡쳐
사진=명품브랜드/구글캡쳐

거꾸로 내 차가 티코라고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워하는 나도 역시 가짜다. 여기서도 티코대신 얼마든지 다른 걸 대체할 수 있다. 
각자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넣어서 생각해보라. 재물, 학력, 외모 등등

즉 외부의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 직접 반응하는 나는 가짜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의 본질은 세상의 환경이나 조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원론적이고 본질적인 진리인데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무시되어 왔다.
심지어 종교인들에게조차 말이다. 
이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부족한 탓인데 기독교든 불교든 힌두교든 간에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기복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문학이 강조되는 것이지만 인문학조차 지식의 수단으로 오해되고 있다.

 

그럼 어쩌라는 것인가? 두 가지 실천과제

어쨌든 우리 마음속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선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이 세상의 온갖 일에 반응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허상이요 그림자인 이 세상에 먼저 반응하는 것도 허상이요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니 세상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거꾸로 아무리 선하더라도 세상 그 자체를 따르지 말고 먼저 나를 비추어 보자. 
여기서 세상이란 결국 내 주변이 될 것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내 주변사람일 수도 있고 내가 처한 환경, 상황일 수도 있다. 
명심하자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임을. 내가 비난하는 세상의 모습이 내 모습임을...

사진=구글캡쳐
사진=나를 비추는 거울/구글캡쳐

둘째는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고 분리해야 한다.

세상이라는 거울을 통해 내가 어찌 반응하는지를 비추어 봤다면 그 다음 단계가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 
내가 어찌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진짜 나인지 가짜 나인지 모른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이를 이뤄가는 과정이 각 종교별로 제시되어 있겠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다만 기본적인 원리만을 언급할 것이다. 
나머지는 독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될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여기 가장 많이 알려진 실천원리가 있어 소개해볼까 한다.
잘 알려진 격언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말은 매우 성경적인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핵심적인 가르침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저 말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성경 지식이 필요하나 간단하게 설명 드리면 
죄를 짓는 나와 진짜 나를 정확하게 분리하라는 말이다.

조성모의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생각해 보라. "내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사진=가시나무/구글캡쳐
사진=가시나무/구글캡쳐

저기서의 죄는 꼭 실정법을 어긴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생활에서 구체적인 예를 드리자면 얼마 전에 유 시민 작가가 알릴레오 라이브 4회에서 KBS기자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을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며 그들 개인에 대해서 아무 판단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취재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때로 비판하는 게 필요하지만 그들이 그렇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제발 신상털기나 저주같은 댓글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 수 있다. 
정확한 말이다. 신상털기나 저주는 그 사람에 대한 공격이다. 죄가 미우니 사람까지 미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일지는 몰라도 성숙한 행위는 아니다. 
그래선 맨 날 가짜와 싸울 뿐이다.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그러니 당장의 비난이나 지적 질을 멈추고 내가 세상의 무엇에 반응해 왔는지 지금 나는 무엇에 반응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이것은 꼭 내 주변만이 아니다 정치의 영역에도 해당된다.

그리고 그 반응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가짜 나인지 분별해 보자

다음 칼럼에서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