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역사기행] 김구 선생의 비서, 최초의 여성 광복군 신정숙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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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美人)역사기행] 김구 선생의 비서, 최초의 여성 광복군 신정숙 선생!
  • 최창훈 기자
  • 승인 2019.11.25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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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최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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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포스트] 최창훈 기자 = 신정숙(본명 신봉빈) 여사는 최초의 여성 광복군이자 백범 선생의 비서로 알려진 유명한 독립투사다. 

<백범일지>는 물론 2000년 봄에 출판된 여성신문의 '이야기 여성사' 제1부에도 등장하는 당차고 씩씩한 여장부 신정숙의 개인사는 그대로 식민시대 우리 민족의 굳센 자존심을 보여주는 독립운동의 역사이다. 

1910년 5월 12일 평안북도 의주 독립운동가 신조준의 딸로 출생하였으며, 19세에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장현근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 1주일 만에 구속된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였다. 

사진 = 김구선생과 신정숙선생 / 전쟁기념관 제공
사진 = 김구선생과 신정숙선생 / 전쟁기념관 제공

남편 장현근은 출옥 후 종적을 감추었고 선생은 남편을 찾아 만주와 임시정부가 있는 곳으로 다녔다. 

4년이나 걸려 어렵게 임시정부에 찾아갔다가 광복군에 가담하게 되었으며, 신봉빈(申鳳彬)이란 가명으로 활동하였다. 귀주성 계림 김원봉의 조선의용대에 있으면서 주소도 모르는 김구에게 계속 편지를 한 덕분에 김구를 만나 임시정부 주석실에서 근무하였다.

선생은 만주에서 전투공작대원으로 유격활동을 하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중국군 특별간부훈련단에 자원 입대해 1년 6개월동안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중국군 장교가 '나라를 망친 망국노'라고 놀린 데 격분한 그녀는 이 장교를 두들겨 패 3일간 '영창' 신세를 졌다.

1941년 4월 29일 임시정부 군사위원회로부터 김문호, 이지일, 한도명과 함께 중국 중앙군 제3전구 사령부에서 유격작전을 전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정식명칭은 한국광복군 징모처 제3분처 초모위원겸 회계 조장이었다.

한국독립당 제8구당 집행위원을 맡으며 정보수집, 대적방송공작, 선전활동 등을 하며 전투 공작대원으로 용맹스럽게 투쟁을 하였으므로 중국에서도 화재를 일으켰으며, 1942년 장개석은 “한 명의 한국 여인이 1천 명의 중국 장병보다 더 우수하다”고 극찬하였다. 

1942년 10월 광복군 제2지대 3구대 3분대에 편성된 이후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활동하였으며, 1946년 3월에 부산을 통해 입국하여 아들과 경교장에서 머물렀다.

김구 선생이 서거한 이후 생계를 위하여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김구의 아들 김신이 대신 진정서를 제출하여 건국포장을 받고, 보상금으로 생활이 어려운 소년소녀들을 키우는 데 사용하는 등 남은 생을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지냈다.

1963년 처음 독립유공자 연금제도가 생겼을 때 그녀는 연금을 거부했다. 이유는 당시 독립유공자 선정을 국사편찬위원회의 특별심사위에서 했는데, 독립운동과 무관한 자들을 유공자로 둔갑시키는 그들의 역사왜곡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선생은 1972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77년 건국포장이 수여 되었다가 1997년 향년 88세에 별세하여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 본 기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진 여성 영웅을 조명한 글로써, 우먼포스트 구독자들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해 제작된 기획기사입니다. 따라서 사실정보만을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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