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역사기행]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으로 세 차례나 투옥, 저항과 투쟁으로 불꽃처럼 살다간 여성독립운동가, 송계월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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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美人)역사기행]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으로 세 차례나 투옥, 저항과 투쟁으로 불꽃처럼 살다간 여성독립운동가, 송계월 선생!
  • 최창훈 기자
  • 승인 2019.12.0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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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송계월 선생이 1930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구금됐을 당시 사진 / 보훈처 제공
사진 = 송계월 선생이 1930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구금됐을 당시 사진 / 보훈처 제공

[우먼포스트] 최창훈 기자 = 송계월(宋桂月)은 1911년 12월 10일 함남 북청군 신창면에서 태어났다.

송계월은 15세 때 “서울에 대한 동경심과 더 배우겠다는 향학열”을 안고 홀로 서울에 와서 1927년 4월 경성여자상업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 학교의 불법 행위에 대항하여 세 차례 동맹휴교를 주도하고 구류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1930년에는 1월 종로구 가회동 소재 하숙집을 항일학생 대표자들의 회합장소로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 여학교 간 연락을 맡아 1월 15일 서울여학생 만세운동을 이끌며 서울지역 시위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이때 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되어 2개월가량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끝에 1930년 3월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다.

1931년 2월, 송계월은 조지아 백화점(현 을지로 롯데영플라자 자리) 점원으로 취직, 2개월 뒤인 4월에는 개벽사의 제의를 받고 회사 내의 유일한 여성기자로서 잡지 ‘신여성’의 기자가 되었다.

첫 기사는 송적성이라는 필명으로 1931년 4월 ‘신여성’에 실은 ‘내가 신여성이기 때문에’였다. 송계월은 이 글에서 진정한 신여성이란 “개성의 자각과 사회의식을 가지고 가정부인과 노동 여성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평소 자랑스러워하던 대로 “높은 교육열”과 “노동을 통한 경제적 독립” 의식을 지닌 함경도 여자답게 송계월은 열정적인 글쓰기를 통해 자본주의 및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자 했다. 

1931년 12월 ‘신여성’지에 실은 ‘공장소식’이라는 글에서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감독의 성폭력 위협에 시달리는 제사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기도 했다.

1932년 5월 수감생활 중 얻은 위병과 폐병을 치료하기 위해 고향에 가서 요양 하던중 1933년 5월 31일 요양 중이던 함남 북청 자택에서 22세에 요절했다.

송계월선생은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혜성』, 『별건곤』, 『어린이』 등의 개벽사 발간 잡지에도 글을 썼다. 「가두 연락의 첫날」, 「공장 소식」, 「젊은 어머니」, 「신창 바닷가」 등의 소설도 집필하였다

 

 


※ 본 기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진 여성 영웅을 조명한 글로써, 우먼포스트 구독자들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해 제작된 기획기사입니다. 따라서 사실정보만을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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