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역사기행] 오희옥 지사, 10살때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 3대 온가족이 독립운동가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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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美人)역사기행] 오희옥 지사, 10살때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 3대 온가족이 독립운동가 집안!
  • 최창훈 기자
  • 승인 2020.01.06 0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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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아버지 오광선, 언니 오희영, 오희옥 지사 / 출처_용인시
사진 = 죄측 순서로 아버지 오광선, 언니 오희영, 오희옥 지사 / 출처_용인시

[우먼포스트] 최창훈 기자 = 용인시는 2017년 살아계시는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의 소원인 고향(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저택을 마련해 주었다.

올해 95세인 오희옥 지사는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1년 9개월째 서울 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다.

만주에서 태어난 오희옥 지사는 10살 어린 나이에 중국 류저우(柳州)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첩보수집과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을 탈출시키는 등 광복군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나서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아버지 오광선 독립운동가는 1915년 만주로 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서로군정서를 거쳐 대한독립군단으로 활약을 하였고, 이후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특명에 의해 북경에서 비밀거점을 마련하고 독립운동을 하던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뿐만이 아니라 잉태중이였던 어머니는 하루에 밥을 열두가마씩 지어 독립군의 뒷바라지를 했다.

광복군 출신인 언니 오희영,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령을 지낸 형부 신송식 등,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투신을 한 집안이다.

오 지사는 언니 오희영과 함께 1939년 4월 중국 류저우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를 한 후, 일본군의 정보수집과 공작원 모집활동,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을 탈출시키는 역할을 도왔으며, 일본군의 눈을 피해 독립군 간 밀서를 전달하는 일도 하였다.

1941년 오희옥 지사가 소속이 되어 있는 공작대가 광복군 제 5지대에 편입 광복군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의 당원으로 활동을 하였다.

해방후 인천에서 상봉을 한 오희옥 지사의 가족은 6.25전쟁까지 겪으면서 더욱 힘든 삶을 살았다,

이후 오 지사는 용인시 원삼면의 원삼초교에서 8년간 교사활동을 하다 서울로 이사를 하였고, 슬하에 아둘 들, 딸 하나를 두고 수원의 보훈 복지 타운 아파트에  홀로 살아왔다

가족이 모두 독립을 위해 헌신을 하였지만 그 공로를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오희옥 지사와 어머니는 온 가족을 다 공로자로 올리면 남들이 욕을 한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일부로 제외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건국이 되면서 배제가 된 이유는 '친일파때문이다' 라 하였다.

그일을 회상하며 오희옥 지사는 '아버지가 너무도 정직한 분이셨다. 그런 분이 정당한 평가를 받아서 정부를 위해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라며 아쉬워 하기도 했다.

'지금도 친일파들은 대대손손 호의호식하면서 잘 사는데 진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제대로 된 평가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라 전하기도 했다

오희옥 지사는 1990년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 받았다.

 

 

 

※ 본 기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진 여성 영웅을 조명한 글로써, 우먼포스트 구독자들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해 제작된 기획기사입니다. 따라서 사실정보만을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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