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역사기행] 윤희순 선생, 한말 최초 여성의병장, 4대에 걸친 의병활동 뒷바라지와 40년간 항일구국운동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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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美人)역사기행] 윤희순 선생, 한말 최초 여성의병장, 4대에 걸친 의병활동 뒷바라지와 40년간 항일구국운동 전개!
  • 최창훈 기자
  • 승인 2020.01.13 0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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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윤희순 선생의 영정 / 독립기념관 제공
사진 = 윤희순 선생의 영정 / 독립기념관 제공

[우먼포스트] 최창훈 기자 = “나라를 구하는데 남녀가 따로 없다.”, “천 번을 넘어 만 번을 일어서겠습니다. 한민족의 원수를 갚고 우리 가족의 원수를 갚고 한국의 국권을 찾기 위해 지금 우리는 목숨을 내걸고 싸우겠습니다…”라고 했던 윤희순 선생의 비장한 연설은 그의 투철했던 나라사랑과 민족독립의지를 확인시켜준다.

윤희순 선생은 「안사람의 의병가」·「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의병자금과 탄약·군량이 부족하게 되자 군자금을 모금, 놋쇠와 구리를 구입하여 무기와 탄환을 제조, 공급하였다,

<안사람 의병가> -윤희순
"아무리 왜놈들이 포악하고 강성한들 / 우리도 뭉쳐지면 왜놈잡기 쉬울세라 /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소냐 /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없이 소용있나 /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 금수에게 붙잡힌들 왜놈시정 받을소냐 / 우리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 우리나라 만세로다 안사람들 만만세라"

시백부인 의병장 유인석과 시아버지 의병장 유홍석, 남편 유제원, 아들 유돈상과 유민상 등 4대에 걸쳐 의병활동 뒷바라지를하는 등 민족독립정신을 계승하였다.

윤선생은 본관은 해주. 익상의 딸로 태어나 16세 때 유제원과 결혼했으며, 1895년 시아버지 유홍석이 춘천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의병들의 사기를 높이는 의병가를 지어 부르게 했다.

1907년 경기도 가평 일대에서 의병 600여 명이 치열한 싸움을 벌일 때 군자금을 거두어 전해주기도 했다. 한일합병 후 만주로 건너가 의병활동을 계속했으며, 1913년 시아버지가 죽고 1915년 10월 남편 또한 독립운동을 꾀하려다 죽자 대한독립단에 가담했다. 1935년 7월 첫째 아들 돈상이 일본경찰의 고문으로 죽자 3대에 걸쳐 의병활동을 뒷바라지해오던 그녀는 노환으로 10여 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윤선생은 〈왜놈대장 보거라〉·〈오랑캐들아 경고한다〉 등의 격문과 〈애달픈 노래〉·〈병정노래〉·〈의병군가〉 등의 가사가 전하며, 가사는 외워 부르기 좋은 네 토막 형식으로 되어 있고, 관념적인 한자어보다 쉬운 우리말을 사용했다.

 

 

 


※ 본 기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진 여성 영웅을 조명한 글로써, 우먼포스트 구독자들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해 제작된 기획기사입니다. 따라서 사실정보만을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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